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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의 웰빙강좌 6] 부자유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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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2 오후 4:1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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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義)'가 아닌 '친(親)'을 가정의 윤리로 삼은 이유
옛 조상들이 가정의 윤리로 선택한 것은 ‘친(親)’ 이다. 친이란 말 그대로 친하다는 의미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의(義)’ 가 아니라, 사이가 가까워야 한다는 친을 가정의 윤리로 삼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친이 아닌 의라는 글자가 가정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가 자식을 키울 때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이 무엇인가? 공부 않고 놀기만 한다고 혼을 내고, 싸웠다고 혼을 내고, 방을 어지럽혔다 혼을 내고, 말 안 듣는다고 혼을 낸다. 아이와 부모의 사이는 가까워야 하는 데, 부모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잘못했다는 말이 태반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행동은 잘잘못을 가리는 데 주력하고, 아이의 감정이나 아이와의 관계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EBS에서 방영된 <다큐 이사람> '부자유친'의 한 장면.
이렇게 잘잘못을 가리는 교육을 받고 자란 자식이, 성인이 되어서는 나이든 부모가 하는 행동이 잘못이라고 느끼면, 가차 없이 비판하여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잘못하면 벌을 받고, 잘 하면 칭찬 받고 상을 타는 것이 당연하니 부모의 행동도 눈 감아 주지 않는다. 늙어서 하는 행동이 나나 내 자식에게 부담이 되고 피해가 되니, 같이 살 수 없다고 한다.
해서 조상들은 가정에서의 윤리는 ‘옳고 그름’ 보다는 ‘친함’ 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부자유친’ 이라 한 것이다. 이제부터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의미를 한자 한자 음미해 보기로 하자.
먼저 ‘친(親)’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자. 친은 ‘친한가 친하지 않은가’, ‘사이가 먼가 가까운가’를 따지는 말이다. 어떤 상황이나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이 옳은가 그른가, 잘했나 잘못했나를 따지는 말이 ‘의(義)’요, 그 일이 그 구성원이나 당사자들의 사이를 멀게 했나 가깝게 했나, 친하게 했나를 생각하는 말이 ‘친’ 이다. 안 보면 보고 싶고, 보면 마음 편하고 즐거운 사이가 친한 것이고, 같이 있으면 불편하고 답답하고 안 보면 마음 편한 것이 친하지 않은 것이다.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들이 만난다고 언론에서는 떠들썩하지만, 남남(南南)으로 헤어진 부모형제가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 보자. 바로 가까이 살아도 정이 없어서, 친하지 않아서 서로가 서로를 찾지 않는 이산가족이 많은 것이 요즈음의 현실이다. 실제 부모와 자식사이가 친한 가정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부모와 자식은 친하다’는 부자유친이란 말은 잘못된 것인가? 부자유친에서의 ‘유’는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는가?
유(有)라는 말은 단순히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유는 ‘있을 유’가 아닌 ‘있어야 할 유’ 가 되어야 하고, ‘있기 위해서’ 는 ‘있도록 노력해야 할 유’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유친은 ‘부모와 자식간에는 친함이 있다’ 는 뜻이 아닌 ‘부모와 자식간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 이고, 그러기 위해서 ‘부모와 자식은 친함이 있도록 행동하고 노력하여야 한다’ 는 뜻이다. 자식이나 부모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잘못을 지적하되 끝맺음은 사이가 가까워지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부자유친은 친해지도록 언행에 신경 쓰고 노력하라는 말
한마디 말이라도,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친’이라는 말을 염두에 두고 하여야 한다. 내 의사를 밝히되, 말하는 방법이나 행동에 신경을 써서 가족간의 화기를 해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잘못을 지적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이제부터는 부자(父子)의 뜻을 되새겨 보자. 이 말의 뜻은 3단계로 나뉘어 진다.
첫 번째로 내가 부(父)인 경우, 부모로서 자식에게 친해지도록 해야 한다. 자식이 잘못했을 때 혼을 내는 것은 좋다. 혼을 내는 것이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서라면, 마지막에는 잘 다독거려 자식과 거리감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라도 자식이 나를 보면 반갑게 달려올 수 있도록 자식에게 친밀감을 주어야 한다. 또 바쁘다고 자식을 외면하다 보면, 자식에게 거리감이 생기게 한다. 바쁘고 힘들어서 자식을 곁에 못 오게 하다 보면, 어느 새 자식은 자라서 바쁘다고 나를 멀리 한다. 어려서는 부모가 자식을 멀리하고, 커서는 부모가 자식을 찾지만 자식이 부모를 외면한다.
두 번째는 내가 자식인 경우이다. 내가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이 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지, 기쁘게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철모르는 어린 시절은 부모가 다 이해를 해주시지만, 나이가 들수록 말 한마디도 생각하며 해야 한다. 특히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난후에는 언행에 각별히 신경을 써서 부모의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모가 나이 들고 시대가 변해, 지금의 물정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으로 부모를 감싸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자(父子) 사이에 ‘나 아(我)’ 자를 넣어, 내 부모와 내 자식이 서로 친해지도록 행동하여야 한다. 나와 내 부모가 친하고, 나와 내 자식이 친한 단계를 지나, 내 자식과 내 부모님이 친해지는 단계가 되어야 한다. 내가 언행에 신경을 써서 내 부모님과 내 자식이 친해지도록 하면, 자연스레 그 집안은 화목한 가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유친은 ‘부모와 자식이 친하다’는 이상론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이 서로서로 친해지도록 언행에 신경을 쓰고 노력하여야 한다는 말이며, 특히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에서는 ‘내 부모와 내 자식이 친해지도록 내가 노력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국정넷포터 권오상 tonggimuoi@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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