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릴레이 |
장애보다 더한 삶의 짐 - 문정림(가톨릭의대 재활의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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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준(가명)이는 현재, 8세 5개월 된 남아이다.
하지만 도준이는 운동이나 인지 기능면에서 모두 1세 수준을 넘지 못한다.
걸을 때는 소위, ‘운동실조’라고 하는 증상이 있어, 몸통 및 하지에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 비틀비틀 걷는다. 게다가 다리에는 ‘경직성’ 이 동반되어 있어, 하지에 힘을 주어야 할 때는 오히려 뻗치는 힘이 방해를 하여 겉는 모양이 좋지 않다. 얼굴과 양쪽 손에는 ‘불수의 운동성’이라고 하는 운동 형태 때문에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면, 얼굴을 찡그리거나 손을 허우적대며 불필요한 동작을 하게 된다.
언어도 ‘엄마,아빠’ 라는 말은 물론 ‘마마,빠빠’ 와 같은 단어도 발음하기 어려워, 단지 옹알이나 울음소리 등으로 의사 표현을 한다. 신체 지적도 하지 못한다. 게다가 경련성 질환이 있어, 생후 10개월부터 항경련제를 써 왔지만 잘 조절되지 않아, 계속 약의 종류와 양을 달리하며 조절하고 있다.
이런 도준이의 손을 잡고 진료실에 들어서는 어머니의 얼굴이나 몸짓은 힘들어 보이지만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다.
“교수님 안녕하셨어요? 도준이는 오늘 물리치료를 잘 받았고요. 요사이 의사 표현이 많아져서 더 번잡스럽게 구네요. 의사 표현이 많아진 게 좋은 현상이지요?” 하며, 밝은 표정으로 무언가 내게 동의와 위로를 구하는 모습이다. 도준이는 무언가 알지 못할 소리를 지르면서 마구 흔들이는 불안정한 손짓으로 엄마를 잡아끌며 금세라도 넘어질 듯하면서도 진료실 문밖으로 나가려는 몸짓을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차분함을 잃지 않고 도준이를 달랜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요즈음 도준이의 발달상의 변화뿐 아니라 물리치료 받는 이야기, 다른 장애 아동 어머니와 어울려 지내는 이야기 등을 짧은 시간 동안에 꺼내 놓는다. 도준이 어머니의 외래 방문은 물리치료나 진료만이 목적은 아닌 것 같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도준이 어머니에게는 ‘사람과의 만남’ 이 희망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도준이의 어머니는 도준이가 뇌성마비와 정신지체, 경련성 질환을 동반한 것으로 진단받은 생후 10개월 이후, 아버지의 가정 폭력을 견디다 못하여 집이 아닌 교회나 다른 보호시설, 지인의 집 등에서 지내 왔다. 그동안 신앙인, 그리고 같은 장애를 지닌 아동의 어머니 등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도움을 받아 왔다고 한다. 이러한 도움은 어머니에게 어려움 중에도 실날같은 희망과 기쁨을 주었던 것 같다. 도움을 받았던 이야기를 할 때에는 부끄러워하기보다는 너무도 감사하다는 표정으로 따듯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도준이의 어머니가 언제나 밝은 웃음만 보였던 것은 아니다. 언젠가 도준이가 경련성 질환이 악화되어 심한 발작 증세를 보여, 응급실에 내원한 적이 있었다. 악화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며, 어머니가 이야기한 그 며칠간의 상황은 보통때보다 더욱 여려워 보였다. 도준이를 늘 돌보던 어머니가 며칠간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도준이 외삼촌이 도준이를 돌보게 되었다고 한다.
몸도 잘 가누지 못하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도준이를 외삼촌이 며칠 돌보다가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던 모양인지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도준이를 다시 돌보러 돌아와 보니, 도준이는 삼촌의 폭력으로 몸에 많은 상처들이 나 있었고, 심한 경련 발작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머니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제 그러한 고비는 지나갔고, 도준이가 꾸준한 치료를 받으며, 커다란 진보는 없지만 날이 갈수록 무언가 자그마한 변화를 보이는 가운데 어머니는 다시 밝고 힘찬 모습을 보이고있다. 어머니는 가정폭력과 아동 학대, 어려운 가정 형편 등, 장애보다 더 버거운 ‘세상의 짐’ 을 짊어지고 있다.
하지만 도준이의 손을 잡고 진료실에 들어서는 어머니의 모습은 ‘세상 속으로의 즐거운 외출’ 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위 사람들의 작지만 많은 도움들을 감사하며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마음과 그러한 도움에 안주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고자 하는 의욕을 가진 어머니가 세상 속으로 즐거운 외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도준이와 어머니의 세상 속으로의 즐거운 외출이 ‘진료실로의 즐거운 외출’ 이 되도록 이들에게 즐겁고 기쁜 한마디의 위로와 격려, 사랑을 담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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