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내가 소인이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도를 닦으니 마느니 하며 큰소리 치고, 뭔가 보통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 했었는데, 그게 바로 큰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해들 앞에서 큰 소리 치는 내가, 아해들보다 나은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평상시 아해들에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형제간에 서로 양보하며 동기간에 우애 있게 행동하라고 했다. 집안의 화목을 깨는 것이 나쁜 것이지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며, 싸우면 둘 다 혼을 냈다. 아해들 버릇을 잘 들이려고 조그만 잘못에도 혼을 냈고, 방이 어지러우면 빨리 치우라고 큰 소리를 쳤다.
애들이 서로 싸우는 걸 보면 별로 대수롭지 않은 걸 가지고 싸운다, 해서 답답하고 화가 나기만 했었다. 그렇지만 애들이 싸울 때마다, 잘못할 때마다 화를 내고 혼을 내는 내 행동은 아해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아해들이 싸우고 잘못해도,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행동해야 되지 않을까? 조그만 일에도 걸핏하면 싸우는 아해들이나, 그때마다 인상 쓰고 화를 내는 나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여태 몰랐었다. 조금만 잘못해도 혼을 내는 나를 닮아서, 아해들도 자주 다투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니, 참으로 내가 작은 인간, 소인(小人)이라는 걸 알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문을 빨리 닫으려고 스위치를 누르고, 빨리 도착하기를 바라 지금 몇 층인지 자꾸만 층 표시등을 바라본다. 엘리베이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몇 분이나 된다고 그리도 조바심을 내는지...
차를 몰고 다니다가 끼어드는 차를 보면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깜박이를 켜고 얌전히 들어오면 그래도 덜하지만, 갑자기 끼어드는 차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진다. 마찬가지로 내가 끼어들려 하는 데 양보하지 않으면, 상대편 차가 너무 한다고 불평을 하게 된다.
골목길에서 차가 마주치면, 양보하기보다는 상대편이 양보하기를 바란다. 특히 자식들을 태웠으면,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하여 양보하는 미덕을 자식들에게 가르칠 절호의 기회인데도 멍청히 지나가 버린다.
나이 어린 후배나 부하직원을 대할 때는 어떠한가? 역시 마찬가지다. 아래 사람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여유를 가지고 너그럽게 대하기보다는 발톱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기가 참으로 쉽다. 가르친다는 미명하에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사디스트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나 싶다.
예전에 무교동의 한 빌딩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엘리베이터가 너무 예민하여 옷깃만 스쳐도 불이 들어오고, 불이 들어 온 층마다 모두 멈췄다.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여 자꾸만 서는 엘리베이터처럼, 작은 일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여 남을 피곤하게 하는 내가 바로 소인이었다.
큰 일 보다는 작은 일에 신경 쓰는 사람이 소인이지, 소인배라고 특정하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일을 크게 생각하여, 자기도 괴로워하고 남도 괴롭히는 것이 소인이다. 앞으로는 큰일도 작게 보아 여유를 가지고 대하는 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한 번 대인 흉내를 내면서 살아보자.
국정넷포터 권오상 tonggimuoi@freechal.com
<권오상님은> 26년째 국선도 단전호흡을 수련한 기체조 및 단전호흡 사범으로 국회, 종합청사, 금감원 등에서 지도했고 이 분야의 강의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수련을 통한 정신의 건강과 육체의 건강, 그리고 경제적 건강이란 3가지 건강의 필요성을 깨닫고 호를 삼강(三康)이라고 지었으며, '웰빙 컨설턴트'로 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