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는 분야의 것을 남의 말을 통해 이해하고 판단하는 일은 그리 쉽지가 않다. 특히 신체나 정신의 건강과 같이 들여다 볼 수 없는 어느 이의 속사정을 남의 입술과 혀를 빌려 제대로 알아차린 다는 것은 더구나 어렵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위험하기까지 하다.
세상의 어느 누구나 말꾸러기의 소인이 있는 탓인지, 말이 말을 낳고, 그 말은 또 다른 말을 낳아 나중에 가서는 처음의 참뜻이 전연 그릇 전해지는 수도 있거니와 심지어는 과장과 오해가 생겨 서로 난처한 입장이 되게끔 만든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들어 곰곰 생각한다 해도, 아니면 모른 척 귀 넘어 들어 흘린다 해도, 어느 쪽이든 오류의 소지는 있다. 그런 연유에선지 중국의 列子는 일찍이 아예 남의 말 들음을 극히 경솔하고 위험한 것이라 믿고 다음과 같은 일화를 남기고 있다.
鄭나라 때의 列子는 아주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자 주위의 어떤 사람이 열자의 곤궁함을 정부고관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관청에서는 부랴부랴 상당량의 곡식 등을 열자의 집으로 보냈다. 그러나 열자는 단연코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에 열자의 아내는 당장 굶어 죽을 판에 우선 받아두지 모슨 이유로 거절하느냐고 물었다. 열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관에서 누구에게 선가 내가 몹시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서 곡식을 보내준 듯하다. 그렇게 남의 말을 잘 믿는다면 만약에 이다음에 누가 나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전할 때에도 그대로 믿고서 옥에 가둘지는 모를 일이요. 그때 내가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으면 큰일이 아니겠소’
귀가 여리다는 표현이 있다. 그저 남의 말에 솔깃해 동분서주 뛰어 다니는 경우다. 반면에 고집불통으로 귀가 질긴 사람도 있다. 양쪽 경우 모두 귀에만 집착한 탓에 잘못을 자아낼 수 있다. 그러나 건강에 관한 문제에선 열이면 열 모두가 귀가 여려지는 것이 상례가 아닐까. 아무리 귀가 질기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건강에 관한 얘기들이다. 단지 듣기에 지극히 좋은 말, 듣기에 꽤 역겨운 남의 말일수록 한 번 더 확인하여 그 眞意를 살펴봄이 바로 슬기로운 남의 말 듣기가 아닌가라고 성서의 이야기를 되짚을 뿐이다.
쏟아지는 정보, 밀려오는 건강에 관한 홍보의 물결 속에서 두 쪽귀를 곧바로 세우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