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은 대부분의 사람이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하는 증상으로, 그 원인이 되는 질환은 수백 가지에 이른다. 원인 질환이 많은 것처럼 환자들이 호소하는 증상도 멍하고 띵한 것부터 터질 듯하거나, 욱신거리거나 찌르는 것 등 매우 다양하다. 그중 병의원을 찾는 가장 흔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두통질환이 편두통이다.
편두통 치료의 권위자인 김병건 대한두통학회 회장(53·을지대 을지병원 신경과 교수)은 “편두통의 만성화에 특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편두통 질환과 그에 따른 장애에 대한 가족과 사회, 그리고 보건당국의 이해가 높아져야 한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잦은 진통제 복용 습관을 버려야 하며, 우울증·비만 등을 제대로 치료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편두통이 만성화되어 치료 자체가 매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대한두통학회가 실시한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60% 이상이 1년에 한 번 이상 두통을 경험하며, 그중 3%는 거의 매일 두통을 겪고 있다.
또한 30~50대 기혼 여성 5명 중 3명은 최근 3개월간 한 번 이상 두통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하는 등 두통으로 불편을 겪는 경우가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두통 중에서도 크게 문제가 되는 편두통은 심한 두통은 물론 동반되는 빛, 소리, 냄새에 대한 불편감과 소화 장애 및 어지럼으로 인해 업무와 학업 등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을 초래한다. 대표적인 증상은 두통과 함께 동반되는 위장관 증상, 즉 ‘체하면 머리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면 메슥거리거나 토 한다’이다.
또 머리가 아프면 밝은 빛이나 소리·냄새 등에 예민해지는 것도 편두통의 특징적인 증상이다. 우리나라 성인의 17% 이상이 편두통을 앓고 있으며, 특히 중년 여성의 경우 3명 중 한 명이 환자로 조사되고 있다.
이렇듯 많은 사람이 편두통으로 일상생활에 방해를 받지만 병의원을 방문해 제대로 진단과 치료를 받은 환자는 5%도 안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편두통은 단순히 한쪽 머리가 아픈 증상이 아니라 두통과 함께 소화장애 등 여러 증상이 동반되는 하나의 질환입니다. 병명과는 달리 흔히 양쪽 머리가 아프며, 한쪽 머리만 아픈 경우는 원발찌름두통, 군발두통(얼굴과 머리의 통증과 함께 눈물, 콧물, 결막충혈 등을 동반함) 등 다른 원인일 수 있어요. 또한 많은 사람들은 편두통을 치료가 되지 않는 병으로 오해해 진통제에만 의존하지만 예방약제에 의해 편두통은 효과적으로 조절될 수 있습니다.”
김 회장에 따르면, 편두통은 다른 질환과 달리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기 때문에 보호자나 선생님 혹은 직장동료로부터 불성실하다거나 게으르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그 결과 편두통 환자들은 두통으로 인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 머리가 아픈 채로 출근하는 게 결근하는 것보다 직장의 전체적인 생산성이 더 저하됨이 입증됐다.
가족과 사회의 몰이해는 그 자체로도 환자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적극적인 치료를 방해하는 큰 요인이 된다.
“아직 편두통이 개인 삶의 질과 사회의 생산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질환이라는 보건당국의 인식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심한 편두통으로 인해 많은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지만 편두통 전문주사제는 보험약가의 벽에 부딪혀 20여년째 도입되지 못하고 있으며, 가장 흔히 사용되고 있는 편두통 예방약제인 베타차단제도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편두통은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파괴하는 심각한 방해꾼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적절히 치료받지 못하면 만성편두통이나 약물 과용으로 이어지게 된다.
과거에는 편두통 환자들이 약물치료의 부작용이나 효과부족으로 치료를 포기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부작용이 적고 효과적인 새로운 편두통 치료제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두통으로 인해 생활에 지장을 받거나 진통제 복용이 잦은 경우는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
편두통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첫째, 유발요인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술이나 스트레스가 두통을 유발한다면 그것을 피하거나 조절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둘째, 증상이 자주 나타날 경우 예방 약제를 매일 투여하는 것도 유용한 치료 방법이다.
셋째, 일단 두통이 시작된 경우라면 가능한 빨리 복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단 진통제의 복용은 주2회 이하로 제한하여야 한다.
“어떤 종류의 두통이든 만성화로 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잦은 진통제 복용은 그 자체가 두통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만성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만성 편두통 환자들이 입원해서 며칠만 진통제를 끊어도 두통이 줄어드는 신기한 체험을 하는 것은 같은 맥락입니다.”
두통학회의 최근 조사결과, 만성 편두통 환자의 절반 정도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잦은 두통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유발하고,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두통을 악화시키는 등 쌍방 간에 악영향을 준다.
편두통을 비롯한 두통이 잦은 환자는 반드시 우울증 같은 정신건강 이상 유무를 평가해 같이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만 또한 각종 두통의 만성화에 중요한 악영향을 미친다. 운동하고 살을 빼는 것만으로도 두통이 많이 호전된다.
“한 달에 15일 이상 머리가 아프다면 만성 두통을 의심해야 합니다. 증상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 두통의 진단 기준을 적용합니다. 만성 편두통이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죠. 만성이 되면 우울증도 심해지고 진통제 복용도 더 잦아지고 두통 상태가 더 나빠지는 악순환을 겪게 됩니다. 사소한 원인으로도 두통이 더 쉽게 유발되고 치료 또한 쉽지 않습니다. 주 2회 이상, 한 달에 8회 이상 두통이 나타난다면 만성 편두통의 위험신호가 켜진 셈입니다.”
생활 속에서 두통을 예방하고 개선하려면 두통을 유발하는 요인을 찾아 피하고 효율적인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월경(생리)이나 흐린 날씨 등은 피할 수 없지만 대처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스트레스, 수면부족, 수면과다, 과식, 금식, 술 등은 스스로 조절하고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두통 일기를 쓰면 자신의 상태를 자세히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김 교수는 대한두통학회 회장으로서 지난 2016년 ‘두통의 날(1월23일)’을 제정해 ‘두통도 병이다’ ‘두통질환 바로 알리기’ ‘편두통질환 역학조사’ 등 매년 두통 인식개선 국민캠페인과 의사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등에 주력하고 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즐겨라’가 그의 좌우명이다.